풍류와 시정이 넘치는 선인들의 누각 영남루
우리나라의 누각은 굽이돌아 흐르는 강을 끼고 저마다의 독특한 풍광을 뽑내고 있는데
낙동강의 지류인 밀양강변 절벽위에 위치한 보물 제147호 '영남루'는
외적인 아름다운 모습뿐만 아니라 높은 누각에 올라 바라보는 주변의 경치 또한 수려하다
특히 화려한 단청과 다양한 문양조각이 한데 어우러진 누각에는
퇴계 이황. 목은 이색. 문익점 선생 등 당대의 명필가들의 시문 현판이 즐비하다
현재의 건물은 1843년 이인재부사가 중건한 것으로 조선시대 때부터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누각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건물이다
본 누각을 중심으로 좌측에 능파각을.. 우측에 침류각을 익루로 거느리고 있는데
본 누각과 침류각 사이에 층층각 이라는 계단형 통로가 있는 독특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영남루 아래 밀양강변에는 아랑낭자의 전설을 간직한 '아랑사당'이 있다
영남루 - 우측에 보이는 건물이 '침류각'이다
영남루 전경
누(樓)란 건물의 사방을 트고 마루를 높여 지은 집으로 일종에 휴식공간이라 할 수 있는데
영남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2층 다락형으로 팔작지붕 형태를 갖추고 있고
조선시대 때 밀양도호부 객사에 속했던 건물로 손님을 맞거나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좌측에 보이는 건물이 '능파각'이다
영남루 전면 부분
중앙의 '영암루' 현판은 누가 쓴 것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고
귤산 이유원이 쓴 교남명루(嶠南名樓) - 문경새재 이남의 이름 높은 누각 - 현판과
강좌웅부(江左雄府) - 낙동강 좌측의 아름다운 고을 - 현판이 좌.우에 자리하고 있다
위의 현판은 밀양강변쪽 외부에 있는 현판으로 성파 '하동주' 선생이 쓴 것이고
아래의 현판은 영남루 내부에 있는 현판으로 이인재부사의 둘째 아들 '이현석'이 7세 때 쓴 것이다
영남루에는 신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영남루 측면 풍경
밀양강 절벽의 아름다운 경관과 조선시대 후반기 화려하고 뛰어난 건축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누각인 영남루
영남루 전면 풍경
기둥의 높이가 높고 기둥과 기둥 사이를 넓게 잡아 매우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건물 안쪽 윗부분에서 용 조각으로 장식한 건축 부재를 볼 수 있고 천장은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이다
대들보에 있는 용
영암루에는 총 11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데
11마리는 양쪽 기둥에서 올라오고 있는 8마리의 용과 양쪽 대들보에 있는 2마리의 용
그리고 천장 귀퉁이에 그려져 있는 1마리의 용을 말한다
기둥에서 올라오고 있는 용
천장 모서리 4면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
천장 귀퉁이에 그려져 있는 '봉황'
천장 귀퉁이에 그려져 있는 '용'
본 누각에서 침류각으로 내려가는 계단
침류각으로 내려가는 계단형 통로를 층층각이라 부르고 지붕은 높이차를 조정하여 층을 이루고 있다
층층각의 아름다운 모습
밀양 박씨의 시조인 '박언침'의 묘가 있던 자리에서 본 영남루
올해의 '아랑낭자'로 뽑힌 처자가 앉아 있는 '능파각'
영남루 아래 밀양강변에 '아랑낭자'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아랑각'
아랑낭자에 대한 전설
조선조 명종 때 밀양부사의 외동딸 동옥 아랑은 매우 아름다웠다
그런데 신분의 차이도 잊은 채 아랑을 사모하게 된 한 관노가 아랑의 유모를 매수하였고
유모의 권유로 아랑은 영남루로 달구경을 나왔다
유모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관노는 아랑에게 다가가 사모한다는 고백을 하였으나 아랑이 크게 꾸짖자
당황한 관노는 비수로 아랑을 죽이고 시신을 영남루 옆 대나무밭에 묻었다
종적을 감춘 딸을 그리며 눈물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던 밀양부사는 딸을 찾지 못한 채 서울로 올라갔는데
그 후 부터 밀양에 새로 부임해 오는 부사마다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일이 생기자
밀양부사로 오려는 사람이 없던 차에 어느 날 젊은 신임부사가 부임하였다
부임 첫날 밤 젊은 부사 앞에 아랑의 원혼이 나타나 지금까지의 연유를 말하고
원한을 풀어줄 것을 부탁하면서 내일 아침 나비가 되어 자기를 죽인 관노의 갓에 앉겠다는 말을 하고 사라졌다
이튿날 부사가 관속들을 모두 모이도록 해 놓으니 흰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관노의 갓 위에 앉았다
극구 부인하던 관노는 곤장으로 추궁하니 아랑을 죽이고 영남루 옆 대나무밭에 던진 사실을 털어 놓았다
부사는 관노를 처벌하고 아랑의 시신을 수습해 제사를 지내주니 아랑의 원혼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고을도 태평해졌다고 한다
떠나기 전 다시 한번 올려다 본 언덕위의 영남루
어느 시인이.. 구성진 밀양 아리랑 노래 가락이
종남산 중턱에 아지랑이로 어리면 스무살 새악시 손짓하듯 진달래는 지천으러 피어나
영남루 다락 위에 서면 전생의 여한도 절로 절로 삭혀지나니.. 라며 노래한
이곳 영남루는 정녕 풍류와 시정이 넘치는 선인들의 누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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