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섬에 있는 니코스 카잔차키스 의 무덤
영화로도 만들어져 더욱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실존 인물이었던 조르바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볼 때마다 그동안 책으로 보낸 세월이 너무 억울해서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했다는 심정을 책 속에 써 놓았던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883년 2월 18일 당시는 오스만 터키 제국의 영토이었던 크레타 섬의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습니다
터키의 지배 하에서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 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카잔차키스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그리스의 역사적 사상적 특이성을 체감하고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과 연결시켰다고 합니다
자유에 대한 갈망 외에도 카잔차키스의 삶과 작품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여행이었는데
1907년부터 다닌 유럽과 아시아 여행 중 붓다를 알게 되면서 그의 사상적 결론이 엿보였다고 합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은 베네치안 성벽으로 둘러싸인 '마르티네고 요새'의 제일 높은 곳에 있었다
마르티네고 요새 정상으로 오르는 돌계단 길
돌 계단 길을 돌면 카잔차키스의 무덤으로 오르는 또 다른 계단이 나타난다
무덤 입구에 서 있는 안내판
안내판에는 카잔차키스의 출생에서부터 사망할 때까지의 약력이 적혀 있었다
요새 정상에 오르니 에게 해와 이라클리온 도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 왔다
카잔차키스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 부인과 함께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도 소박하게 나무 십자가와 묘비만 세워져 있는 카잔차키스의 무덤
작고 소박한 그의 묘지에 쓰여진 비문에서 그가 생전에 갈망했던 사상을 엿볼 수 있었다
카잔차키스의 묘비 앞면에 쓰여진 글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리스인 조르바' 책에서 스캔한 내용
묘비 뒷면에는
세계 각국의 글로 <평화. 사랑>이라는 글이 동판에 새겨져 있었다
카잔차키스의 무덤과 그의 부인 '엘리니 사미우'의 무덤
그는 고향의 품에서.. 그가 원했던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부인과 함께 영원한 자유인이 된 것이다
1957년 10월 26일 백혈병으로 사망하기 전 독일인 주치의에게 보낸 엽서
존 스타인 백은 20세기에 활동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카잔차키스를 꼽았고
195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카뮈는 카잔차키스야말로 자신보다 백 번은 더 노벨문학상을 받아야 했다고 말했으며
슈바이처는 자신에게 깊은 감동을 준 사람은 카잔차키스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콜린 윌슨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은 비극이라면서 만일 카잔차키스가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다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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