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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여행] 잉카의 작물 시험장 모라이와 결사 항전지 올란타이탐보

사파이어* 2012. 8. 11. 06:00

 


   잉카의 작물 시험장 모라이와 결사 항전지 올란타이탐보

 

      고산 계곡에 잉카인들이 만들어 놓은 살리네라스 염전지대를 출발하여 30분 정도를 가니

        붉은색 산과 붉은색 벌판만 보이고 인가도 없는 황량한 벌판에

        커다란 원형 경기장 같은 모양의 움푹 들어간 분지에 계단식 원형밭이 여러개 보였는데

        이곳이 바로 잉카인들이 아마존 유역의 열대성 농작물을 고산 지대에 적응시키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요즘의 '농작물 재배 시험장'과 같은 역활을 하는 '모라이 (MORAY)'였다

 

        문자도 없는 잉카의 문명에서 어떻게 이런 방법으로 농작물 재배 시험을 했을까 하며 감탄을 하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올란타이탐보'로 향하였다

        이 마을은 잉카인들이 만든 마을 중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그 당시에 만든 수로에는 몇 백년이 지난 지금도 골목마다 물이 흐르고 있었고

        마을에는 스페인 정복자들에 대한 잉카인의 결사 항전지였던 요새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살리네라스 염전지대를 출발하여 모라이로 가는 길

날씨는 흐렸지만 붉은색 산과 붉은색 벌판만 보이니 오히려 모든 것이 건강해 보였다

 

 

방목을 하고 있는 가축들

 

 

길가에 당나귀와 양이 보이기에 차에서 내려 보고 있노라니

 

 

목동인 형제가 새끼양을 안고 나타났다

 

 

그리고 가축들을 돌보고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수줍은듯 바라보는것이 순수해서 함께....

 

 

살리네라스 염전지대를 출발한지 30분 정도 지나 도착한 '모라이'

 

 

원형 경기장 모양의 잉카인들의 농작물 재배 시험장 '모라이'

 

잉카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은 대부분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년중 기온이 20℃ 내외로 선선하였다

그러다 보니 재배할 수 있는 농작물이 제한적이었고 식량이 늘 부족하였던 잉카인들은

이런 제한적인 농작물의 품종을 다양화 하기 위하여 모라이에 농작물 재배 시험장을 만들게 된 것이었다

시험장은 여러개가 있었고 그 중에 가장 규모가 큰 것의 깊이는 30m나 되었으며

1.5m~2m 폭인 계단식 원형밭은 제일 위에서부터 맨 아래까지의 온도차가 약 15℃라고 하였다

그래서 맨 아래는 초여름 같이 따뜻하였고 잡초들이 꽃을 피운것도 볼수 있었다

 

 

 

이러한 시험장에 잉카인들은 열대지역의 농작물을 기온이 제일 따뜻한 맨아래에 심은 후

매년 조금씩 계단밭 위로 옮겨 심어 고원지대 기후에 적응시켰는데

성공한 농작물중 대표적인 것이 아마존 유역 열대성 농작물인 '옥수수'였다

 

 

돌로 쌓아 만든 계단식밭 층마다 설치되어 있는 배수로와 돌계단

맨 위에서 물을 흘려 보내면 배수로를 통해 맨 아래에 있는 밭까지 흘러 가도록 되어 있었다

또 다른 잉카인들의 지혜를 엿볼수 있는 모라이였다

 

 

모라이에서 '올란타이탐보'로 가는 길

올란타이탐보는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역이 있는 곳이며 잉카의 결사 항전지 유적이 있는 마을이다

 

 

올란타이탐보 마을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쉬었던 길가의 수예품 가게

 

 

겨울 산행에 요긴하게 쓰일 것 같았던 털모자

 

 

 

 

 

가게 옆에 있는 방안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엄마를 대신해 어린아기를 돌보고 있는

여자 아이를 발견하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큰 눈망울로 미소를 보내는 어린소녀가  조금전에 본 페루의 인형과 너무 닮았다

 

 

4,000m급 설산들과 녹색물결의 옥수수밭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올란타이탐보 근교 

 

 

모라이에서 2시간 30분 걸려 도착한 '올란타이탐보'

올란타이탐보는 마추픽추가 발견되기 전 잉카인들이 스페인군에 대항한 마지막 결사 항전지로 알려져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1536년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반기를 든 잉카의 왕 망코 카팍이

군대를 이끌고 올란타이탐보에 잠입하여 스페인군을 격퇴시켰다고 한다

훗날 잉카의 공중 요새 마추픽추가 발견되면서 <최후의 항전지>라는 타이틀을 마추픽추에 넘겨주기 전까지

올란타이탐보는 잉카 문명과 항전지를 상징하는 중요한 유적 중에 하나였다

 

 

올란타이탐보 마을 뒤편으로 계단식 밭이 보이고 그 위에 신전터가 있다

 

 

45도 정도 경사면에 계단식으로 석축을 쌓아 만든 밭이 보이고 그 사이로 돌계단 길이 급경사로 이어졌다


 

계단식 밭 위에서 본 6개의 신비한 거석

태양의 거울이라고도 불리는 이 거석의 한개 무게가 약 50톤이라고 하며 높이 4m. 길이 10m. 깊이 1m 규모이다

그 옛날 변변한 도구도 없이 이렇게 거대한 돌을 높은 곳까지 옮겨 놓은 것이 신기한데

잉카인들에게 이 거석은 '신이 하룻밤 사이에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전터로 알려져 있는 부분

 

 

계단식 밭 위에 있는 잉카인의 저장 창고

 

 

신전터에서 바라 본 올란타이탐보 마을

올란타이탐보에서 마지막 항전을벌인 잉카인들은 살아 남은 무리들을 이끌고 비르카밤바로 떠났는데

잉카문명을 연구하는 고고학자나 탐험가들은 아직도 이 비르카밤바가

정글 속으로 깊숙이 숨어 역사의 페이지에서 사라진 잉카인들의 마지막 정착지라고 믿고 있다

 

 

폐허의 자리에 남아 있는 이곳을 '공주의 욕조'라고 부르고 있다

 

 

아직도 마을에서 사용되고 있는 전형적인 잉카의 출입구

 

올란타이탐보는 단순히 기차역만이 아닌 울란타이탐보 유적지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었다

마추픽추 전에 있는 잉카의 최후 방어 도시였던 올란타이탐보는

이곳에서 스페인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였기에 그 사실을 더 기억해 주기를 원할 것이다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를 타기 전에 기념으로 찍은 사진

 

이 기차는 오늘 밤에 마추픽추 밑에 있는 마을인 '아구아스 깔리엔떼스'에 도착할 것이고

나는 내일 아침이면 꿈에 그리던 마추픽추에 오를 것이다

이번에는 입장시간도 하루에 두번으로 제한되어 있고 하루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도 제한되어 있는 

마추픽추 바로 옆에 있는 깍아지른 바위산 와이나픽추에도 올라갈 예정이기에

고산증세가 조금 나타나고 있지만 기차를 타기도 전에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