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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여행] 크레타 독립 운동의 시발지인 아르카디 수도원

사파이어* 2014. 3. 9. 07:00

 

크레타 독립 운동의 시발지인 아르카디 수도원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는 그만큼 아픔의 흔적도 많이 간직하고 있나 봅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파란 하늘색과 싱싱한 초록빛 언덕들을 보여주고 있던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는

오스만 제국의 공격에 맞서 항거를 하다가 항복을 하는 대신에 화약고에서 1,500명의 오스만 병사와 함께

자폭을 택한 846명의 용감한 크레타인들의 흔적이 있는 '아르카디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크레타 프실로리티스 산맥의 기슭.. 초목으로 둘러싸여 있는 넓은 평지에 세워진 아르카디 수도원은

16세기에 비잔틴 황제인 Arcadius의 이름을 따서 건립한 수도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만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수도원은 너무나도 조용한 분위기와 건물 내,외부의 단순한 장식 때문에

참사의 현장을 바라보면서도 마음 속에서는 숭고함과 함께 잔잔한 평화를 느꼈던 곳이었습니다

 

 

아르카디 수도원 건물로 들어가기 전 외부에 별도로 있는 '추념 공간'에는

이 항거의 주요 인물인 저항을 이끈 크레타의 영웅 Konstantinos Giaboudakis와 수도원장 Gabriel

그리고 폭발 현장에서 살아 남아 이 사건을 증언한 소녀의 흉상이 있었다

 

 

추념 공간 모퉁이에 세워져 있는 '납골당'

이 납골당에는 폭발로 숨진 사람들의 두개골 중 일부가 장식장에 안치되어 있었다

 

 

폭발로 숨진 사람은 대부분 부녀자와 어린아이였고 수도사들과 수도원장을 포함 모두 846명이다

 

 

서쪽 출입구에서 바라본 '아르카디 수도원' 내부

거의 정사각형의 형태를 이루며 많은 방들이 연결되어 있는 아르카디 수도원(Arkadi Monastery)은

내부에 넓은 중정을 두고 있었는데.. 그 한복판에 교회가 서 있었다

 

 

1587년 완공된 베네치안 바로크 양식의 교회

 

 

총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교회의 외벽은 품위 있는 간결함이 보이면서 아름다웠다

 

 

교회 내부의 제단 부분

 

 

수도원 중정에는 포도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한그루 고사한 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폭발된 폭약의 파편 때문에 고사한 나무

나무에는 항거 당시에 박힌 파편이 아직도 박혀 있었다 (화살표 부분)

 

 

화약 저장고로 가는 길을 따라 심어져 있는 포도나무가

줄지어 피어 있어 장미와 제라늄과 어울리며 시원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수도사들의 작업실 옆에 있는 아치 회랑 (Cloisters)

 

 

저장 창고 (Cellar)

 

 

수도사들의 기도처

 

 

와인 창고였던 화약 저장고

크레타에서 오스만 군대와 싸우다 그리스 군은 거의 전멸을 하였고 일부 그리스 군과

대부분이 부녀자와 어린아이인 크레타의 주민들 그리고 수도원장과 수도사들은 이곳에서 마지막 항거를 하였다

이틀간의 포위 공격 후 수도원 내로 진입한 오스만 군에 의해 일차로 식당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이곳 화약 저장고에서의 자폭으로 나머지 사람들이 오스만 병사들과 함께 죽었다

 

 

화약 저장고 한쪽 벽면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Konstantinos Giaboudakis의 지휘하에 화약통들을 모으고 있는 크레타인들의 모습이다

 

 

물기도 없는 돌담 위에 피어 있는 이름모를 들꽃에서

변변한 무기도 없이 오스만 군대에 대항하다 숨진 강인한 크레타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아르카디 수도원 교회의 뒷부분

 

 

2층 회랑에서 본 교회의 전면

 

 

반대편 아치 개구부로 프실로리티스 산맥의 기슭이 보였다

 

 

중정에서 본 아르카디 수도원의 서쪽 출입구

 

 

서쪽 출입구 앞에서 본 수도사

 

 

밖에서 본 아르카디 수도원의 서쪽 출입구

 

그리스는 1453년 이슬람이 동로마 제국이었던 비잔틴 제국을 무너뜨린 콘스탄티노플 함락 후부터

1829년 독립을 쟁취하기까지 무려 376년 동안이나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터키와 근접해 있는 크레타 섬은 여전히 터키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1866년 터키군에 대항하여 싸웠던

그리스군 중 일부와 크레타 주민들이 자폭으로 아르카디 수도원에서 목숨을 잃은 것을 계기로

크레타 독립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 마침내 독립을 쟁취하게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