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천 맑은물이 감아돌아 흐르는 절벽위의 절경 '죽서루'
죽서루는 창건자와 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동안거사집>에 의하면..고려 원종 7년(1266)에
이승휴가 안집사 진자후와 함께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것을 근거로 그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조선 태종 3년(1403)에 삼척부의 수령인 김효손이 옛터에 중창하였으며
수 십 차례에 걸쳐 증수되거나 단청되면서 증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누(樓)란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지은 다락형식의 집을 일컫는 말이며
누의 동쪽으로 죽장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이 있어.. '죽서루'라 하였다고 한다.
죽서루 난간에 기대어 멀리 바라보면 서쪽으로 백두대간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까마득한 절벽 아래 파란 강물이 감아 돌아 흐르는 절경은 많은 시인과 화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
죽서루를 노래한 시는 현재 알려진 것만 해도 500수가 넘는다고 한다
관동팔경의 제1루. 보물 제213호인 삼척의 자랑 '죽서루'를 돌아보자
오십천 절벽위에 자리한 죽서루
죽서루는 자연주의 전통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진수로 우리민족의 생활철학을 대변하는 건축물이다
규모는 앞면 7칸·옆면 2칸이지만 원래 앞면이 5칸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추후 증축)
지붕도 옆면에서 볼 때 팔작지붕인데 천장의 구조로 보아 원래 다른 형태의 지붕이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지만
재료 형태는 다른 양식을 응용한 부분이 있다
이 누각에는 율곡 이이 선생을 비롯한 여러 유명한 학자들의 글이 걸려 있다
그 중‘제일계정'은 현종 3년(1662)에 삼척부사 허목이 쓴 것이고‘관동제일루'는 숙종 37년(1711)에 삼척부사 이성조가 쓴 글이다
正祖御製 (정조어제) - 위쪽 현판글
돌 다듬고. 절벽 쪼아 세운 누각 하나
누각옆은 푸른 바다이고 바다에는 갈매기 노네
죽서루가 있는 고을의 태수는 어느 집 아들인가
미녀들 가득 싣고 밤세워 뱃놀이 하는구나
누각 아래에는 17개의 기둥이 있는데.. 9개는 자연 암반위에 8개는 기초석 위에 세워져 있어 모든 기둥의 길이가 다르다
자연 암반위에 직접 세워놓은 기둥들의 모습
아래층에서 누각으로 올라갈때는 자연 암반만을 밟고 올라가게 되어있었다
건물내에는 계단이 없고 건물 옆으로 별도의 계단이 있다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진주관 죽서루 오십천 나린 물이 태백산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가니'라고 노래하였다
죽서루 '선사 암각화'
죽서루의 암각화는 바위위에 여성 생식기 모양의 구멍을 뚫어놓은 성혈 암각이다
성혈은 선사시대에 풍요. 생산. 다산을 상징하는 것인데.. 조선시대에는 칠월칠석날 자정에 부녀자들이
아들을 낳기 위하여 성혈터에 찾아가서 치성을 드리는 민간신앙 장소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죽서루 경내의 성혈은 10개이다
암각화가 있는 바위 구멍으로 본 죽서루
주차장쪽에서 본 죽서루
깍아지른듯한 절벽과 기암괴석..낚시를 즐길수 있는 오십천의 맑은 물이 감싸돌고 있는 죽서루 인근에는
동굴신비관과 동굴탐험관 그리고 시립박물관이 있는 엑스포타운이 있었다
죽서루 033) 570-3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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