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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여행] 신들의 산책로가 있는 '카르나크 신전'

사파이어* 2011. 1. 8. 11:23

 

신들의 산책로가 있는 '카르나크 신전'

 

이집트는 나라 전체가 고고학 박물관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비교적 넓게 여러 곳을 여행한 후 지금도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곳은

피라미드가 있는 '기자' '아부심벨' 카르나크신전이 있는 '룩소르'였다  

여행을 떠나기전 주위 사람들로 부터 이집트에 가면 룩소르는 꼭 들려야 한다고 들었고

어떤이는 지금껏 여행다닌곳 중에 룩소르가 제일 좋았다는 말도 들은터라

기대를 잔뜩 하고 갔는데.. 과연 룩소르는 대단하였다

카르나크신전과 룩소르신전이 있는 룩소르는 정말 신비하고 장엄한 곳이었다

 

룩소르시내에서 북쪽으로 3km떨어져 있는 카르나크 신전은

파라오 시대에는 '이페트수트' 라고 불렸으며 그의미는 '가장 완벽한 곳' 이란 뜻이라 한다

카르나크 신전은 룩소르에 있는 네개의 신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신전으로

아문라 신전. 무트 신전. 몬트 신전 등이 함께 있는 복합신전이다

제18왕조의 아멘호테프 1세(BC 1525~1504)때 신전 건설을 시작한 이래

그리스 마케도니아 혈통의 프톨레마이오 왕조에 이르기까지

무려 1500년 동안 계속하여 새로운 건물과 조각 그리고 오벨리스크를 세웠다 

 

 

카르나크 '아문라신전'의 '제1탑문'

 

세누스레스1세(BC1964~1918)에 의해 처음 건설된 '아문라신전'은 점토벽돌에

외장만 암석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현재는 그 모습을 찾기 힘들고

18대 왕조의 아멘호테프1세가 세운 '아문라신전'과 '안마당'

투트모스1세~3세를 거치면서 세워진 '탑문'들과 하트셉수트.투트모스3세에 세워진 '오벨리스크'

세티1세와 람세스2세가 건설한 '대 열주실'등이 현재까지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카르나크 신전을 공중에서 찍은 사진

 

주 신전인 아문라 신전은 로마의 베드로성당, 파리의 노틀담성당, 이탈리아의 밀라노성당이

한꺼번에 들어 갈수 있을 정도의 규모라고 한다

 

 

'제1탑문' 앞에 있는 스핑크스들

 

가자 지구에 있는 스핑크스는 사자 몸에 사람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 이지만

카르나크 신전의 스핑크스는 사자 몸에 양머리 이다

 

 

'대열주실'로 들어가기 위하여 거치는 '안마당'

 

 

'대열주실' 입구에 서있는 람세스 2세의 석상

 

 

 대열주실 앞의 람세스2세 석상과 그의 부인 네페르타리

 

파라오 석상에는 부인을 무릅옆에 새겨 놓는 경우가 많은데

그 키가 파라오의 무릅을 넘지 않는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람세스2세의 석상에 있는 부인 네페르타리는 그 불문율을 깬 유일한 인물이다

 

 

아문라 신전 벽면에 새겨져 있는 그림

 

 

신전 곳곳에 세워져 있는 조각

 

 

카르나크 신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는

주 신전인 아문라 신전 내부에 있는 '대열주실' 이었다

길이102m 넓이 53m 크기의 이 홀에는 높이 23m 하나의 둘레가 15m인 어마어마한 기둥이  

좌우 양쪽에 각각 67개씩 134개가 기둥의 숲을 이루고 있었다

 

 

기둥에는 빈틈없이 그림과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대열주실은 룩소르 신전을 건설한 18왕조의 아멘호테프 3세가

처음 12개의 기둥을 세운 이래

제19왕조의 람세스 1세, 세티 1세를 거쳐 람세스 2세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을 보았는데

건설하는데 동원된 연인원이 82,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다열주실을 지나면 탑문 사이로 좁은 마당이 나온다

이곳에 투트모스1세와 투트모스3세가 세운 두쌍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었으나

세개는 간곳이 없고 지금은 하나만 홀로 서 있다

 

현재 서있는 오벨리스크의 높이는 23m 무게는 무려 143톤이나 된다고 하는데

이것이 한덩어리의 돌로 만들어 졌다고 하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좁은 마당을 지나니 하트셉수트 여왕이 세운 오벨리스크가 나왔다

 

 

하트셉수트와 투트모스3세의 '오벨리스크'가 모두 짝없이 홀로 서있는 모습

 

오벨리스크가 처음 제작된 이유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태양신 라(Ra)에게 바치기 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그후 종교적 이유로 신에게 바치기 위하여 또는 왕이 자신의 공적을 알리기 위하여

기둥에 조각을 새겨 넣는 방법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고대에 제작 될 당시에는 대부분 두개의 기둥을 함께 세웠으나

후에 역사적 침략이나.. 친교를 위한 외국에 기부. 약탈 등으로 인해 옮겨져

현재는 하나의 오벨리스크만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신성한 호수

 

 

하트셉수트여왕의 다른 하나의 오벨리스크는 부서져 신성한 호수 옆에 누워 있었다

 

 

'투트모스 3세' 재위 기념 홀

 

 

'투트모스 3세'가 파괴한 그의 어머니 '하트셉수트'의 조각

 

하트셉수트는 처음에는 어린 투트모스3세를 대신하여 섭정을 하였으나

아들을 신전안에 유폐시키고 쿠테타를 일으킨후 이집트 최초의 여성 파라오가 되었다

성인이 된 투트모스3세는 왕권을 되찾은후 하트셉수트의 조각 부분을 다 파괴하였다 

 

 

람세스 3세의 '아문 신전'

 

 

'아문 신전' 내부

 

 

일몰이 찾아오고 있는 카르나크 신전

 

 

두개의 장대한 오베리스크도 점점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는 나일강은 룩소르를 동안과 서안으로 나누어 놓았는데

나일강 동쪽은 해가 뜨는 곳이라 하여 살아있는 사람들과 신들의 공간으로

해가 지는 서쪽은 죽은 망자의 공간으로 나뉜다

신들의 공간에서.. 석양에 점점 사라져 가는 장엄한 역사의 흔적을 바라보면서

악조건인 기후속에서도 찬란한 고대 문명을 이루고 유지해 나간

이집트인들의 깊은 정신세계와 뛰어난 건축기술에 다시 깊은 감동이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