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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여행]엉키고 밀치고 당기는 멋이있는 사물놀이

사파이어* 2009. 7. 26. 21:57

 

 

 

엉키고 밀치고 당기는 멋이있는 사물놀이

( 민족음악원 원장 이광수 ) 

 

 

 

1978년 2월 소극장 공간사랑 주최 '제1회 공간 전통음악의 밤'이 개최 되었을때에

4명의 젊은 국악인들의 연주가 소개 되었다.

꽹가리에 김용배. 장고에 김덕수. 북에 이광수. 징에 최종실로 구성된 이들은

'웃다리 풍물 - 경기 충청가락'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날의 공연에 참석했던 사람들 중 아무도 이 공연이 오늘날 전국을 통틀어 '사물놀이'라 부르는

단체만도 수십개에 달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공연이 있은 2개월후인 78년4월 같은 장소에서 이들의 두번째 공연이 끝났을 때에

이들과 여러 지기들은 이 팀의 이름으로 '사물놀이'라는 명칭을 탄생 시켰다.

'사물'이란 이들이 연주하는 4개의 악기를 뜻하며

 '놀이'란 농악대나 걸립패들의 공연을 지칭해 온 낱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탄생된 '사물놀이'라는 단어는 이들의 성공적인 공연활동과 더불어 이제는 마치

'소규모의 농악 또는 걸립패 형태의 전통공연 양식'처럼 보통명사화 하여 쓰여지게 되었다. (음악동아)

 

 

사물놀이의 창시자인 이광수원장을 만나러 예산의 민족음악원을 방문하였다   

 

 


민족음악원 입구에서 일행을 반기는 솟대

 

 

 2008년 국립극장에서 사물놀이 30주년 기념공연을 주최하였던 민족음악원

 

 

 현관에 들어서자 각종 공연 포스터가 양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고


 

사물놀이 단원이 원장실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1층 민족음악원 원장실

 

 

이광수 원장 

 

 

민족음악원 2층 

 

 

학습을 위하여 설치된 2층에 있는 깨끗하고 넓은 다인실 숙소

 

 

 

사물놀이를 배웠던 2층 학습당 

 

 

학습당에 비치되어 있는 사물악기

사물놀이는 70년대에 외래문화의 침입과 유신의 광풍 속에서 풍물굿이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시기..

풍물굿이 미신으로 배척받고 민족고유의 '굿정신'이 한낱 푸닥거리고 천시 당하던 시기에 서서히 시작되었다고 한다.

 


 

과거 전문예인유랑집단으로써 이름을 날리던 남사당에서 잔뼈가 굵은 20대의 젊은이들..

한때는 판이 벌어지면 온갖 귀염과 사랑을 독차지하며 몇몫의 놀이채를 받던 재간동이 들이었으나

세상은 변했고. 더 이상 판은 벌어지지 않았고. 배운 것이라고는 판놀음 밖에 없는 그들이 어른이 된 것이었다

이들이 뭉쳐서 사물놀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굿판을 벌리게 된 것은 어찌보면 사라져가는 굿을 살리기 위한,

그리고 그들이 놀아야 될 굿판을 스스로 찾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5살때부터 남사당에 들어가 양도일선생, 남운용선생, 송순갑 선생으로부터 온갖 기예를 사사 받은 김덕수

남운용 행중에서 최성구, 양도일선생 등으로부터 기예를 배운 김용배

역시 남사당에서 김복섭스님, 이성호 선생으로부터 비나리를 전수받은 이광수

삼천포 지역에서 당대의 소고잡이로 인정받고 있던 최종실

이들의 만남은 사물놀이의 탄생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78년 이후 사물놀이는 국내에서 폭발적인 호응과 더불어 국외로 뻗어나가

해외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국내에 본격적으로 자리잡게 된다.

사물놀이는 무대라는 형식상 공동체 연희에는 조금은 맞지않는 특성때문에 한때 젊은 층에서는 배척 당하기도 했으나

뛰어난 예술성과 창조성 때문에 90년대 이후 젊은 층으로 빠르게 자리잡았다고 할수있겠다

 

 

기초 학습후 사물놀이 공연을 직접 보여준 이광수원장과 단원들 

 

 

 

 

 

 

 

 

 

 

 

 

 

 

 사물놀이에 사용되는 악기



쇠로 만드는 타악기의 하나로 본래의 소리는 '정'(鉦)이나 징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
징의 크기는 대략 지름이 약 36cm, 둘레의 높이는 10cm이며, 징의 쇠 두께는 3mm 정도이다.

징은 장단을 바르게 쳐주는 것이 중요하며, 사물의 가락(쇠, 장구, 북, 소고)을 모두 감싸서 널리 울려 퍼지게 한다.
풍물굿 악기 가운데 가장 은은한 소리를 내며 포용력이 있는 악기라 할 수 있다.
징을 칠 때는 징 채를 짧게 잡고 징의 한가운데를 부드럽게 밀듯이 쳐야 소리가 되바라지지 않고 웅장한 소리를 낸다.

꽹가리
꽹과리는 쇠, 매구, 깽매기, 깽쇠, 광쇠, 꽝쇠, 소금(小金), 동고, 쟁 따위로 불린다

앞치배들 가운데 맨 앞에서 쇠를 치는 사람을 '상쇠'라 하는데, 상쇠는 풍물굿패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꽹과리의 크기는 지름이 대략 21cm(7치), 둘레 부분은 높이가 3.6cm(1치 2푼) 정도이다.

쇠채로 쇠의 가운데와 전두리(쇠의 테두리) 사이를 친다.
꽹과리는 장구와 아울러 율동악기로서 으뜸인데 옛날에는 군악이나 정악, 무악, 풍물굿 등에 두루 쓰였고

풍물굿에서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가락으로 사람의 느낌을 고조시키고 흥을 돋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풍물굿의 악기 가운데에서 북은 가장 오래된 악기다.

그 까닭은 청동기시대 이전의 목축시대에 만들수 있는 가장 간단한 악기기 때문이다.
북은 잔가락을 운영하는 것이 주가 아니므로 다양한 가락의 연주보다는

박을 힘있게 짚어 가면서 그 기상을 힘찬 춤으로 펼쳐 나간다. 북치는 사람의 자리도 경상도에서는 꽹과리, 징 다음에 선다.

장구
죽 타악기의 하나로 양편 머리가 크고 그 허리가 가늘다 하여 세요고(細要鼓)라고도 한다.
왼쪽(북편, 궁편)은 말가죽이나 소가죽, 노루가죽을 대 가죽이 좀 두껍고 소리가 낮으며,

오른쪽(채편)은 보통 말까죽이나 개가죽을 대 가죽이 얇고 높은 소리를 낸다.
장구의 통은 사기, 기와, 쇠, 나무, 바가지, 양철 따위를 쓰는데, 보통 미루나무와 오동나무를 많이 쓴다.
장구통의 궁통과 채통을 이어 주는 곳을 조롱목이라 하는데,

조롱목이 너무 넓으면 소리가 헤프고, 조롱목이 너무 좁으면 소리가 되바라진다.
장구는 두손으로 치기 때문에 가장 다양한 소리를 내 어깨춤이 절로 나게 만든다.

분위기를 흐드러지게 하고 풍성하게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악기이며, 민요나 춤 장단을 칠 때는 궁편을 손으로 치기도 한다.

장구를 메는 방법도 지역이나 사람마다 다르고, 그 나름의 맛을 제각기 갖고있다.

 

 

 

 

광수 원장 민족음악원에서 체험해본 사물놀이는 신명나는 우리가락의 진수를 맛보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가슴속에서 울려오는 덩 덩 쿵따쿵~ 궁따 쿵따 쿵따쿵~ 가락소리는

조상의 삶과 얼이 담긴 풍물가락 이기에 그속으로 빠져들어 배우고 싶은 열망이 솟아난다

 

 

 

 

사단법인 민족음악원

서울 학습당 070-7797-1652

예산 학습당 041-333-3777 

 www.samulnori.com